<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대한민국 1호 프로파일러 권일용 선생님의 실무 경험을 토대로, 범죄자의 심리를 추적해 가는 과정을 밀도 있게 담아낸 논픽션이다. 사건의 팩트 나열을 넘어 프로파일러가 사건 현장에서 마주한 감정과 윤리적 고민까지 따라가게 만들며, 활자를 통해 한 편의 범죄 드라마를 보는 듯한 몰입을 제공한다. 첫 장부터 내가 살던 동네 인근에서 벌어진 사건이 다뤄져 섬뜩함이 배가되었고, 읽는 동안 여러 번 멈춰 숨을 고르게 했다.
책: 프로파일링의 과정과 프로파일러의 감정
이 책의 장점은 ‘프로파일링이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질문에 단계적으로 답한다는 점이다. 현장 정보의 취합, 행동 분석, 범인의 가능성 좁히기, 범죄자 유형화 등 수사 심리의 기본 공정이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전개된다. 덕분에 독자는 “통찰이 번쩍한 한순간”이 아니라, 수많은 가설과 반증, 그리고 팀의 협업 끝에 얻는 결론이 프로파일링의 본질임을 깨닫게 된다. 동시에 각 지점에서 프로파일러가 느끼는 감정의 진폭—분노, 연민, 무력감, 끝내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사건 기록을 ‘읽는 재미’만 남기지 않고, 피해자와 유가족을 향한 예의와 존엄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를 끝까지 붙잡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첫 사건이 생활권과 맞닿아 있었다는 사실은 ‘범죄 뉴스’가 멀리 떨어진 타인의 일이 아니라는 현실을 새삼 돌이켜 보게 했다.
드라마: 화면으로 체감하는 범죄 심리 수사
동명의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책의 골격을 유지한 채, 인물의 감정선과 수사 현장의 호흡을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김남길, 진선규, 김소진의 연기는 절제와 밀도를 겸비해 프로파일러와 수사팀의 ‘시간’을 설득력 있게 체감하게 한다. 자극적인 범죄 재현보다, 표정과 침묵, 시선의 동요로 심리를 구축하는 방식이 돋보인다. OTT로는 Wavve에서 먼저 보았고, 최근 넷플릭스 서비스가 시작되며 ‘역주행’ 관심이 이어지는 중이다. 책으로 기반 지식을 갖춘 뒤 드라마를 보면 장면의 디테일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고, 드라마로 인물의 호흡을 먼저 느낀 후 책을 읽으면 화면에 담기지 않은 심리 묘사의 깊이를 더 길게 음미할 수 있다.
독서 이후의 질문: 처벌, 신뢰, 그리고 시스템
읽는 내내 들끓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사형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국가 권력인 경찰을 믿어야지” 같은 즉각적 반응은 이해할 만하다. 동시에 책은 분노를 넘어서 구조의 질문으로 시선을 옮긴다. 수사 역량의 축적, 데이터와 사례의 체계화, 부서 간 협업과 자원 배분, 피해자 보호와 2차 가해 방지, 미디어의 보도 윤리 같은 ‘시스템’이 촘촘해야 재범을 낮추고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프로파일링은 그 시스템의 한 축일 뿐, 영웅적 직감의 다른 이름이 아니다. 결국 우리가 믿고 기대해야 할 것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학습하고 개선되는 공적 시스템이다. 그런 점에서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감정의 카타르시스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가 어디를 보완해야 하는지 차분히 지목하는 책이기도 하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범죄 심리를 ‘구경거리’로 소비하지 않고, 고통과 존엄을 중심에 두게 만드는 드문 기록이다. 책으로는 과정과 내면의 깊이를, 드라마로는 현장의 호흡과 긴장감을—두 매체를 함께 경험하면 시야가 한층 넓어진다. 사건은 끝나도 상처는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더 나은 시스템을 요구하고, 공적 신뢰를 단단히 세워야 한다. 그 질문을 끝까지 붙잡게 만드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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