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이 작가의 장편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일제강점기 하와이로 이주한 한인 여성들의 삶을 배경으로 한다. 사진결혼이라는 독특한 역사적 장치를 통해 여성 이민자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조명하며, 여성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된다. 감동과 역사, 문학적 완성도가 공존하는 소설이다.
1. 사진결혼, 식민지 여성의 운명을 결정짓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의 중심 배경은 일제강점기 한인 이민 역사 중 하나인 ‘사진결혼’이다. 이는 조선에서 하와이로 이주한 독신 남성 노동자들이 고국에 있는 여성과 사진만으로 혼인 계약을 맺고, 여성들이 이후 신랑의 나라로 건너가 살아가는 결혼 형태를 말한다. 작가는 이 제도를 단순한 결혼 방식이 아닌, 여성을 둘러싼 식민지 사회의 억압적 구조로 해석한다.
주인공 버들, 홍주, 송화는 각기 다른 이유로 하와이로 이주한다. 가난에 밀려, 자유를 찾아, 혹은 가족을 위해 떠난 그들은 모두 ‘사진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전혀 다른 현실과 마주한다. 사진 한 장으로 결정된 운명은 현실과 너무나 달랐고,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들이 피해자에 머무르지 않고,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과정을 따뜻하게 담아낸다.
특히 사진결혼을 둘러싼 서술은 단순한 제도적 비판을 넘어선다.
사진 속 아가씨는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고,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이 장면은 독자의 시선을 붙잡으며, 여성들이 당대의 현실 너머 미래를 보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작가는 이처럼 상징적인 장면을 통해, 억압 속에서도 꿈을 품었던 여성들의 내면을 조명한다.
2. 연애소설인가 역사소설인가, 장르를 넘나드는 문체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독자에 따라 연애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역사소설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실제로 작품 초반에는 각 인물의 사연과 감정이 중심이 되며, 독자의 몰입을 이끈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진행되며, 하와이 플랜테이션 노동, 차별, 전쟁, 제국주의 등 굵직한 역사적 배경들이 서사에 스며든다.
이처럼 개인의 서사와 시대의 맥락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성이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다. 작가는 특정 사건이나 역사적 사실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여성 인물들의 일상과 갈등, 감정을 통해 그 시대의 공기를 독자가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전쟁의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또 어떤 이들은 전쟁으로 인해 잘 먹고 잘사는 현실은 짧지만 강한 문장으로 표현된다. 이는 당시를 살았던 이들의 복잡한 감정과 도덕적 질문을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이처럼 이금이 작가는 짧은 문장과 대사 속에 깊은 역사성과 문학성을 함께 담아낸다.
단숨에 읽었다는 독자 평이 많을 만큼 흡입력은 탁월하다. 그러나 빠르게 읽힌다고 해서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되새길수록 더 많은 의미가 느껴지는 문장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재독을 유도하는 힘도 크다.
3. 여성서사와 디아스포라 문학의 연결지점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여성서사의 전통과 디아스포라 문학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작품이다. 여성의 이민 서사를 다룬 한국문학은 상대적으로 드물지만, 이 작품은 그 빈자리를 정중히 채우며 여성 이민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근현대사를 복원하고 있다.
버들, 홍주, 송화는 단순히 고난을 겪는 여성이 아니라, 시대를 살았던 주체적인 개인이다. ‘엄마’라는 단어가 제목에 쓰였다고 해서 모성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들’은 이민자의 정체성과 역사를 품은 존재로 그려진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여성의 삶과 기억, 목소리를 회복시키는 데 집중한다.
특히 송화의 이야기는 여성 이민자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 언어의 문제, 타국 사회에서의 이중차별 등을 정면으로 다룬다. 이처럼 단순한 감정적 서사를 넘어서 복합적인 구조 속에서 여성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본 작품은 한국 여성문학의 중요한 성취로 꼽힌다.
문학적으로도 이 작품은 디아스포라 문학의 주요한 계보에 위치할 수 있다. 외국 땅에서 살아남고, 뿌리내리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여성의 이야기는 단순한 생존기가 아니라, 문화적·사회적 저항이기도 하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그런 면에서 기억되어야 할 서사이다.
이금이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사진결혼이라는 역사적 장치를 바탕으로 한 시대를 살아낸 여성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강인하게 그려낸다. 연애와 역사, 현실과 이상, 아픔과 회복이 조화를 이루는 이 소설은 문학성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지닌다. 한국문학 속 여성 디아스포라 서사의 흐름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문화생활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 프로파일러가 본 범죄와 사회 (19) | 2025.08.11 |
---|---|
〈아몬드〉 서평 – 다름을 품는 법, 2025 뮤지컬 재공연 소식까지 (32) | 2025.08.08 |
책 〈삼국평화고등학교 테러 사건〉 | DMZ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테러와 침묵 (30) | 2025.08.07 |
책 〈파과〉, 60대 여성 킬러의 이야기이자 존재에 대한 기록 (26) | 2025.08.06 |
책 <천 개의 파랑> | K-SF의 대표작, 기계보다 따뜻한 감성 SF (23) | 2025.08.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