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데이즈: 암호명A>는 유한양행 창업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유일한 박사의 실제 행적을 바탕으로 창작된 역사극입니다. 스윙 재즈 음악과 항일투쟁 서사를 절묘하게 결합한 이 작품은 경쾌한 리듬 속에서도 묵직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제목인 ‘스윙데이즈’는 어린 시절 그네 타던 시절의 기억과 스윙재즈라는 장르적 의미가 교차되며, 관객에게 더 깊은 상징과 울림을 선사합니다.
그네와 재즈, ‘스윙’의 두 얼굴
<스윙데이즈: 암호명A>에서 가장 인상적인 상징은 바로 제목 속 ‘스윙(Swing)’이라는 단어입니다. 보통은 스윙 재즈 장르를 떠올리기 쉽지만, 극 중에서는 유일형, 야스오, 황만용 세 인물이 어린 시절 함께 그네를 타며 놀던 추억을 “스윙 데이즈”라 부르며 회상합니다. 그네처럼 앞뒤로 흔들리던 순수하고 자유롭던 시절, 세 인물은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걷습니다. 유일형은 기업가이자 독립운동 자금 후원자로, 야스오는 친일 경찰로, 황만용은 명분 없는 폭력에 회의감을 느낀 이상주의자로 서로 대립하는 인생을 살게 되죠. 이처럼 ‘스윙’은 순수했던 과거와 갈등의 현재, 진자운동처럼 오가는 인간 내면을 상징합니다. 동시에 공연 내내 흐르는 재즈 스윙의 리듬과 즉흥성은, 무거운 주제를 유연하게 풀어내는 음악적 장치로 작용합니다. 이처럼 ‘스윙’이라는 단어는 서사와 음악 양쪽에서 핵심적인 이중 구조로 작품을 이끕니다.
‘암호명A’, 베로니카, 그리고 죄책감의 형상
<스윙데이즈>의 서사는 실존 인물 유일한 박사를 모델로 한 ‘유일형’이, 독립운동을 단순한 재정적 후원이 아닌 실질적인 스파이 활동으로 참여하게 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 계기가 되는 인물은 ‘베로니카’. 유일형과 함께 항일활동을 하던 이 여성 독립운동가는 극 초반 일본군에 의해 사망하지만, 이후에도 무대 위에서 영혼의 형상으로 계속 등장합니다. 베로니카는 단순한 ‘유령’이 아닙니다. 그녀는 유일형의 양심, 책임감, 죄책감으로 상징되며, 관객들은 마치 유일형의 내면과 대화하는 듯한 감각을 받게 됩니다. 그녀가 말없이 유일형을 지켜보는 장면들은 무대 위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며, “무언가를 끝내기 전엔, 정말 끝나는 게 아니야”라는 대사가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넘버의 힘과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
이 작품에서 가장 압도적인 순간은 1막의 마지막 넘버 ‘멈출 수 없어’입니다. 유일형이 외면하던 현실을 받아들이고, 본격적으로 행동하기로 결심하는 이 장면은 음악, 조명, 연출이 모두 정점으로 치닫는 순간입니다.
- 유준상 배우는 특유의 우렁차고 단단한 목소리로 유일형의 결단을 강하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 정상훈 배우는 장면마다 코믹함과 진지함을 오가며 극의 리듬을 유지해줍니다.
- 장현성, 김려원, 이창용 등 다른 배우들도 모두 내공이 느껴지는 안정된 연기를 선보이며 공연의 완성도를 끌어올립니다.
공연이 끝난 후 “유준상 발성, 진짜 귀에 박힌다”, “정상훈 연기 이렇게 진중한 줄 몰랐다”는 반응이 절로 나올 만큼 배우들이 극에 몰입한 무대였습니다.
어르신 관객부터 2030까지, 전 세대 공감 가능한 이야기
공연장에는 할인 이벤트의 영향으로 중장년 관객층이 눈에 띄게 많았습니다. 하지만 무대가 시작되자 관객 연령과 무관하게 몰입이 빠르게 이루어졌고, 후반부로 갈수록 여기저기서 눈물 훔치는 관객들이 보였습니다. 베로니카의 존재가 단순한 서사장치가 아니라 ‘기억의 화신’처럼 느껴지는 연출, 자본가로 살아야 했던 유일형이 죄책감을 마주하고 선택하게 되는 여정, 그리고 친구였던 야스오, 황만용과의 대비되는 운명. 이 모든 것이 얽히면서 공연은 ‘개인의 선택이 역사를 어떻게 바꾸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역사적 실화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 윤리적 질문과 개인의 책임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스윙데이즈: 암호명A>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거나 미화하는 공연이 아닙니다. 그네처럼 흔들리던 시절의 기억과 재즈처럼 즉흥적이지만 강인했던 저항정신을 동시에 담아낸 이 작품은, 지금 우리의 ‘스윙하는 삶’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당신이 어떤 자리에서 살아가든, 기억하고 선택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 이름은 잊히지 않는다는 메시지. 올여름, 가볍지 않은 감동과 깊은 여운을 원한다면 이 공연은 분명 추천 1순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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