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한복 입은 남자>는 장영실 미스터리를 소재로 한 작가 이상훈의 장편소설 『한복 입은 남자』를 원작으로 한다.
역사와 상상력을 결합한 서사 속에서 조선과 유럽,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공간적 구조가 인상적이다. 1막은 조선을, 2막은 유럽을 주요 무대로 삼아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랜만에 본 대극장 뮤지컬이라 무대 전환과 LED 연출, 웅장한 넘버들이 주는 스케일감이 확실했다. 이런 지점에서는 역시 EMK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와 캐릭터에 대한 인상
이번 공연에서는 장영실과 강배 역으로 고은성, 세종과 진석 역으로 이규형을 봤다.
고은성의 장영실은 감정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인물이었다. 장면마다 감정의 크기가 또렷하게 느껴졌고, 그 감정을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특히 ‘그리웁다’ 넘버에서는 무반주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극장을 꽉 채우며, 울림이 깊고 단단해 그리움이 직선적으로 전달된다.
이규형의 세종은 성군의 위엄보다는 백성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또렷하게 보였다. 장영실을 지키기 위해 내린 결정은 냉정함이 아니라, 그 시대가 할 수 있었던 최선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관람 캐스트
- 영실 / 강배 : 고은성
- 세종 / 진석 : 이규형
- 정화대장 / 마교수 : 최민철
- 이암 / 교황 : 김대호
- 정의공주 / 엘레나 : 최지혜
- 만복 / 토스카넬리 : 박형규
- 미령 / 파올라 : 손의완
- 이상인 : 채성욱
- 장천일 : 이종영
약소국이 품기엔 너무 똑똑했던 사람
이 작품에서 장영실이 역사에서 사라진 이유는 실수나 몰락 때문이 아니다. 너무 뛰어났기 때문에, 지켜주기엔 나라가 약했기 때문이다. 명나라에 빼앗길 위기에 놓인 장영실을 지키기 위해 세종은 공식적으로는 감옥에 가두고, 비공식적으로는 다른 길을 연다.
약소국이 품기엔 너무 똑똑했던 영실. 그래서 조선의 역사에서는 사라지고 이야기 속에서는 더 멀리 나아간 장영실이다.
나라의 한계 앞에서 그렇게라도 사람을 살려야 했던 세종의 선택 역시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마음으로 다가온다.
조선을 떠난 이후의 상상




작품의 상상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장영실이 유럽으로 건너가 다빈치를 만나 과학을 전했다는 이야기.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이어졌다면 어떨까 하는 가능성 자체가 이 작품의 감정선을 만든다.진짜로 그렇게 유럽으로 건너가고 다빈치를 만나서 과학을 전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묘하게 기뻤다. 이 작품은 성공했는지, 증명되었는지보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을 했는지에 더 관심을 둔다.
넘버와 감정의 중심
서정적인 넘버가 주를 이룰 것이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다양한 장르의 넘버들이 배치되어 있어 극의 흐름이 단조롭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2막 중반 장영실의 넘버 ‘그리웁다’는 이 작품의 감정이 가장 또렷해지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조선을 향한 그리움을 눌러 담아 전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고, 무반주로 울려 퍼지는 목소리의 울림이 오래 남는다.
각색과 무대에 대한 인상

원작 소설과 비교하면 여러 서사가 정리되었다. 등장인물도 많고 사건도 많은 이야기인 만큼 사랑 서사를 덜어낸 선택이 오히려 장영실이라는 인물에 집중하게 만든다. 한정된 무대 위에서 조선과 로마, 피렌체를 오가는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배경 LED가 공간을 적극적으로 확장해 시공간 이동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별자리로 마무리되는 이야기
2막 엔딩에서는 천장부터 객석 벽까지 별자리 조명이 가득 채워진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영실과 세종의 이야기가 잠시 그 별빛 안에 머무는 것처럼 느껴진다. 증명되지 않았고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말해졌다는 사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절반이라도 해보려는 마음. <한복 입은 남자>는 장영실 미스터리를 통해 그 태도 자체를 조용히 남기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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