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무대로 옮겨낸 작품으로, 원작 소설의 섬세한 감정선을 무대 예술로 재해석한 창작뮤지컬이다. 서울 공연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번 후기는 작품의 연출, 배우들의 연기, 감정 표현 방식, 그리고 원작과의 차이를 중심으로 다룬다. 무대 위에서 펼쳐진 감정의 성장 서사는 단순한 감동을 넘어 관객의 마음속 깊은 울림을 남긴다.
감정을 시각화한 무대, 뮤지컬 아몬드의 시작
뮤지컬 <아몬드>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윤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다. 공연의 첫 장면부터 관객은 윤재가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이 작품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전 배우가 1인 N역을 소화하며, 16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무대 위를 가득 채운다는 점이다. 배우들은 소품 없이 몸짓과 표정, 마임과 같은 움직임으로 공간과 상황을 만들어낸다. 큰 무대 전환이 없어 혼란스럽지 않고, 오히려 극의 집중도를 높인다. 이러한 연출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특히 문태유 배우가 연기한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의 미묘한 변화를 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눈빛과 호흡의 미세한 흔들림으로 감정의 싹이 트는 과정을 보여주며, 관객은 그 변화를 따라가며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게 된다. 감정이란 표현이 아니라 ‘이해의 과정’이라는 메시지가 조용히 스며드는 순간이다.
배우들의 호흡으로 완성된 감정의 깊이
공연의 중심에는 윤재의 성장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감정선이 있다. 윤재의 엄마와 할머니는 초반 사건 이후 무대 위에서 물리적으로는 부재하지만, 상징적으로 끝까지 윤재 곁에 머문다. 눈빛과 존재감만으로 전달되는 그들의 사랑은 작품의 핵심 감정선을 이끌어간다. 허순미 배우는 <레드북>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에서도 깊은 감정선을 보여준다. 그녀의 시선 하나, 표정 하나가 윤재가 성장하는 모습을 뭉클하게 표현한다. 또한 김건우 배우가 연기한 곤이는 날카롭고 거친 감정의 화신으로 등장하지만, 그 감정의 폭발이 단순한 분노가 아닌 ‘소통의 갈망’임을 서사 속에서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이형훈 배우의 심박사는 감정이 메마른 윤재와 감정이 넘치는 곤이 사이에서 따뜻한 균형을 유지하며, 두 인물의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 덕분에 작품은 감정의 혼돈이 아닌 감정의 성장으로 귀결된다. 세 배우의 유기적인 호흡은 감정의 결을 입체적으로 쌓아 올리며, 무대 위 작은 움직임 하나까지 의미를 부여한다.
원작 소설과 다른 감정의 결, 무대가 만든 여운

소설 『아몬드』는 문장으로 감정을 그린 작품이라면, 뮤지컬 <아몬드>는 몸과 음악, 공간으로 감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무대에서는 원작과 달리 엄마와 할머니가 끝까지 윤재 곁에 남는다는 점이 작품의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소설이 ‘상실을 통한 성찰’이라면, 뮤지컬은 ‘기억 속에서 이어지는 온기’를 강조한다. 윤재의 내면은 ‘감정 없는 상태’에서 ‘감정을 이해하는 존재’로 변해간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감정의 유무보다 ‘함께 있음’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작품은 관객이 직접 감정을 느끼기보다, 감정의 부재 속에서 느껴지는 여백을 체험하도록 만든다. 이는 최근 한국 창작뮤지컬의 중요한 경향으로, 감정의 폭발보다 정제된 서사와 연출이 감동을 배가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극장의 러닝타임 동안 소극장과 같은 연출이 매력이다. 넓지 않은 무대에서도 배우들의 움직임으로 세계를 확장시키며, 관객 각자의 내면에 감정의 울림을 남긴다. 조용하지만 강렬한 감정선, 그 미묘한 균형이 바로 뮤지컬 <아몬드>의 힘이다.
뮤지컬 <아몬드>는 감정의 부재를 통해 감정의 본질을 묻는 작품이다. 단순한 감동을 넘어, ‘말 없이 곁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온기’를 무대 위에서 구현해냈다. 큰 감정보다는 잔잔한 울림으로, 천천히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공연이었다. 감정을 느끼는 방식이 아닌, 감정을 이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2025년 한국 창작뮤지컬의 정점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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