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10주년 공연은 헬퍼봇이 사랑을 깨닫고 배워가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번 11월 13일 20시 공연(올리버 전성우·클레어 박지연·제임스 이시안)은 재관람의 경험 속에서도 새로운 해석과 감정을 발견하게 만드는 무대였다. 특히 감정 절제를 기반으로 한 배우들의 연기와 시퀀스 구성은 공연의 밀도를 더욱 높여주며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감정의 싹이 트는 시퀀스,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을 여러 번 보았지만 ‘반딧불에게 → 사랑이란 → First Time in Love →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이어지는 시퀀스는 여전히 강한 파동처럼 마음을 흔든다. 헬퍼봇이라는 존재가 사랑을 배우고 깨닫는 과정이 마치 아이가 처음 세상을 이해하는 순간처럼 순수하고, 동시에 인생의 마지막을 마주한 노부부처럼 애틋하게 다가온다. 이 작품이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바로 이 감정의 결을 배우들이 설득력 있게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헬퍼봇은 본질적으로 감정을 과하게 드러낼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배우들은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을 폭발이 아닌 미세하게 표현한다. 이번 공연에서도 전성우 올리버와 박지연 클레어는 노래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억누르다 스쳐 지나가는 떨리는 호흡, 멈칫하는 시선들로 감정을 쌓아 올렸다. 그 절제의 순간은 오히려 감정의 폭발보다 더 강력했고 관객은 그 미묘한 흔들림의 온도를 정확히 느낄 수 있었다. 두 배우는 헬퍼봇 특유의 리듬과 톤을 지키면서도 점점 인간의 감정을 닮아가는 흐름을 섬세하게 조절해 감정 변화를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전석 매진 속에서도 또렷했던 무대, 공간의 장점


이날 공연은 전석 매진이었고 개인적인 해프닝으로 재관람 티켓을 놓고 와 집에 들렀다 오느라 마음이 바빴지만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맨 뒷자리였지만 오페라글라스를 들고 보니 무대가 기대 이상으로 또렷하게 보였고, 음향도 깔끔하게 전해졌다. 이번 시즌은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데 예스24관보다 넓어지면서 무대의 공간감도 커졌다. 특히 실전화기 소품의 실이 길어진 점은 다소 웃음이 났지만 이 작품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과 어긋나지 않아 오히려 반가웠다. 헬퍼봇, 레코드판, 실전화기 같은 장치들은 미래적 존재가 과거의 감성을 배워가는 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넓어진 무대는 캐릭터의 동선을 자연스럽게 확장시키며 감정의 흐름을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 맨 뒷자리에서 바라본 공연은 공간 전체의 조명과 그림자, 퍼포먼스의 균형을 더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했고, 이 작품이 왜 장기적으로 사랑받는지 다시금 확인하게 해줬다. 점점 표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관객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캐스트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색을 띠는 장면
이번 세 번째 관람에서 가장 크게 마음에 남은 장면은 올리버가 제임스 가족을 만나고 돌아오는 대목이었다. 이 장면은 올리버의 절제된 표현 때문에 볼때마다 갸우뚱하게 된다. 이전에는 제임스가 진심을 담아 올리버에게 남긴 레코드판이라는
생각으로 장면을 바라봤지만, 이번 전성우 올리버의 느낌은 조금 달랐다. 같은 대사임에도 그의 표정에는 의아함이 조금 담겨있었달까. 클레어에게 제임스가 이걸 나에게 남겼다고 설명해주는 표정이 다시 생각해도 아리송하다. 그 표정을 보며 제임스가 남긴게 아닐수도 있나?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제임스의 가족이 형식적으로 건넨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 뒤에 “반딧불을 보러 가자”라는 말도 클레어에게 상처받은 모습을 감추려고 애써 화제를 전환하려는 모습으로 보였다.
세 번째 관람이었지만 지루함 없이 더 많은 감정이 새롭게 솟아오른 공연이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볼 때마다 인물의 결, 감정의 떨림, 서사의 층위가 달라지는 작품이다. 이번 10주년 공연은 헬퍼봇이라는 존재를 통해 사랑의 본질을 다시금 묻게 하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랑받을 창작뮤지컬임을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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