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을 무대에서 직접 관람했다. 이전엔 넷플릭스 영화로만 접했던 작품이 무대에서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했는데, 실제로 체감된 감정선과 서사 깊이는 확연히 달랐다. 이번 후기를 통해 영화와 무대의 차이를 비교해보며 각각의 매력을 정리해본다.
1. 넷플릭스 영화로 먼저 본 <디어 에반 핸슨> – 정제된 감정과 영상미
영화 <디어 에반 핸슨>은 베스트셀러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긴 버전으로, 영상미와 배우의 클로즈업 연기로 감정선을 섬세하게 전달하는 점이 장점이다. 특히 영화에서는 카메라의 움직임, 음악의 흐름, 배우의 눈빛 등이 하나의 리듬처럼 맞물리며 스토리를 정제된 방식으로 풀어낸다.
하지만 그만큼 모든 장면이 ‘편집’과 ‘구성’ 안에 놓여 있어서, 감정이 조금 더 간접적으로 다가오는 면이 있다. 예를 들어 에반의 고독이나 불안함이 명확하게 보이지만, 관객의 마음속에 파고드는 정도는 무대에서만큼 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영화로 처음 접했을 땐 ‘에반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했고, 주변 인물들의 감정이나 입장은 다소 약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시각적으로 정제돼 있어 입문자나 원작이 낯선 이들에게 접근성이 높다. 감정을 조심스럽게 따라가게 만드는 연출은 영화만의 섬세한 매력으로 남는다.
2. 무대 위 <디어 에반 핸슨> – 입체적인 감정과 인간적인 공감
이번에 관람한 2024년 무대 버전은 영화와는 전혀 다른 몰입을 제공했다. 에반 역에는 임규형 배우가 출연했고, 하이디 역은 신영숙 배우가 맡았다. 특히 임규형 배우의 움츠러든 몸짓, 눈빛, 말투 하나하나가 캐릭터의 불안함을 고스란히 담아내 관객의 심장을 조여왔다.
무대에선 에반 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감정도 훨씬 입체적으로 전달된다. 영화에선 지나가듯 보였던 엄마 하이디의 감정선이 무대에서는 극적으로 다가왔다. 넘버 <So Big / So Small>을 부르는 장면에서 신영숙 배우는 단순히 슬픈 어머니가 아니라, 모든 걸 감내하며 살아가는 당찬 보호자의 모습으로 감정을 끌어올렸다. 이 장면에서 많은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실제 무대를 보고서야 실감하게 됐다.
또한 영화에선 비교적 단순해 보였던 인물들이, 무대에서는 각자의 결핍과 고통을 지닌 '복합적인 인간'으로 그려진다. 코너 머피, 조이, 알라나, 제러드 모두가 고립과 결핍 속에서 이해받고 싶어 하는 존재로 그려지며, "에반만 특별히 외로운 게 아니다"라는 메시지가 뚜렷해진다.
3. 직접 비교해본 차이점 – 감정선, 음악, 캐릭터 해석
① 감정선 전달
- 영화: 시각적으로는 세련됐지만 감정이 약간 거리감 있게 느껴짐
- 무대: 배우의 생생한 연기와 목소리 덕분에 감정 몰입도 훨씬 큼
② 음악
- 영화: 음원 중심, 편집된 넘버 구성으로 안정감 있음
- 무대: 넘버가 ‘이야기 그 자체’로 살아있음. 공연 중 들은 <So Big / So Small>은 전혀 다른 곡처럼 느껴질 정도
③ 캐릭터 해석
- 영화: 에반 중심의 이야기 구조
- 무대: 모든 인물이 주인공처럼 입체적으로 해석됨. 하이디, 코너, 알라나 등에게도 집중하게 됨
결국, 영화와 무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전달한다. 영화는 안정적이고 부드럽게, 무대는 거칠지만 뜨겁게 마음을 건드린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 만큼 두 매체 모두 볼 가치가 충분하다.
결론: 넷플과 무대 중 하나만 고르라면? 무대의 생생함이 남는다
영화로 먼저 접했던 <디어 에반 핸슨>은 깔끔하고 다듬어진 인상을 줬지만, 무대 위 공연은 감정을 직접 전달받는 듯한 생생함이 있었다. 특히 임규형 배우의 에반은 스크린보다 더 강력하게 관객의 마음을 흔들었고, 신영숙 배우의 하이디는 엄마의 입장을 처음으로 체감하게 해줬다.
그래서 두 버전 모두 의미 있지만, 무대의 울림은 훨씬 오래 남는다. 직접 보고, 직접 듣고, 직접 울 수 있는 현장만의 감정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만약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단연코 무대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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