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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뮤지컬

〈유진과 유진〉 소설 vs 뮤지컬 | 두 번의 울림

by 취향기록노트 2025.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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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먼저 만났던 <유진과 유진>을 뮤지컬로 다시 마주했다. 한 번은 활자로, 또 한 번은 노래와 몸짓으로.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는 같았지만, 감정의 결은 더욱 짙어졌다.

먼저 읽은 소설, 그리고 무대 위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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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유진과 유진>을 보기 전에, 먼저 원작 소설을 읽었었다. 유아성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상처를 감싸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큰유진과 작은유진이 각자 부모의 태도에 따라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그날’을 견디고 살아가는지를 따라가며, 독자로서 나 또한 그 상처를 함께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나무의 옹이가 뭐겄어? 몸뚱이에 난 생채기가 아문 흉터여. 그런 옹이를 가슴에 안고 사는 한이 있어도 다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이 대사는 책에서도, 무대 위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긴 문장이었다. 가슴속 옹이와 흉터를 기억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진심이 전해졌고, 작은유진과 큰유진의 선택이 얼마나 용기 있는가를 되새기게 했다.

책에서는 내면의 감정 흐름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 뮤지컬에서는 배우들의 표정과 목소리, 음악과 조명이 감정을 배가시켰다. 익숙한 대사가 들릴 때마다 ‘맞아, 이 문장 기억나’ 하며 마음속에서 울림이 피어났다.

큰유진과 작은유진, 서로의 거울이 되어

뮤지컬을 보며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가해자는 따로 있는데 정작 유진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거리를 두던 장면이었다. 하지만 결국,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상처를 확인한 두 유진은 서로를 위로하고 감싸게 된다.

이 작품은 ‘누가 더 상처받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대상화되기보단, 상처를 지닌 한 사람으로서 삶을 이어가는 법을 배워가는 이야기. 두 유진은 결국 서로의 거울이 되어,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소설에서 느꼈던 감정이 무대에서 다시 살아나는 경험은 특별했다. 음악과 연기, 조명과 무대가 만들어낸 감정의 결이 훨씬 생생하게 전해졌다. 무엇보다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메시지가 더 단단하게 다가왔다.

우리 모두에겐 무조건 내 편이 필요하다

작은유진과 큰유진이 견뎌낼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결국 부모의 사랑이었다. 작은유진은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상처를 혼자 감당해야 했지만, 큰유진은 “엄마 아빠 가슴 속에 있는 사랑”을 믿었기에 버텨낼 수 있었다. 그 차이는 생각보다 아주 크다.

뮤지컬을 보면서 문득 떠올랐던 생각은 “살아가면서 어떤 상처를 받아도, 무조건 내 편인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만큼 안정적인 감정은 없다.” 는 것이었다.

작품이 끝난 후, 객석에 남은 감정은 단순한 슬픔이 아닌 따뜻한 연대감이었다. 그리고 그건 소설을 읽을 때도, 무대를 볼 때도 같았다. 다만, 무대에서는 훨씬 더 직접적이고,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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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은 상처를 다룬 이야기이지만, 결코 어둡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아픔을 마주하는 방식, 서로를 위로하는 시선, 그리고 살아갈 수 있는 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 소설로 한 번, 뮤지컬로 한 번. 두 번의 만남이 전해준 메시지는 같았지만, 무대 위에서는 더 깊고 뜨겁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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