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이 상징적인 시기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다시 무대에 오른 뮤지컬 <명성황후>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기에 충분한 기회로 평가된다. 본 작품은 조선의 마지막 국모인 명성황후의 삶을 중심으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인물이 감당해야 했던 국가적·개인적 비극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필자는 2021년에도 해당 작품을 관람한 바 있다. 그때 느꼈던 감동과 무대의 힘은 여전히 인상 깊게 남아 있으며, 이번 2025년 시즌은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보다 성숙한 시선으로 공연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본 글에서는 두 시기를 관통하며 관람한 뮤지컬 <명성황후>의 변화와 완성도를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1. 시대와 운명을 상징하는 인물의 재조명
뮤지컬 <명성황후>는 단순한 전기적 서사에 머물지 않는다. 작품은 명성황후라는 실존 인물을 통해 제국주의의 위협 속에서 조선이 겪은 내적 갈등과 외적 압박을 입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명성황후는 작품 내에서 정치적 수완을 지닌 인물이자, 외세에 맞서는 상징적 존재로 표현된다.
2025년 공연에서는 명성황후의 내면 심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연출이 구성되었다. 외교적 고립과 내부의 정치적 반목 속에서 황후가 선택해야 했던 결정들이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며, 단순한 비극의 주인공이 아닌 책임감을 가진 인물로 제시된다. 고종과의 대립, 일본 세력에 대한 저항, 개인적 고뇌는 무대 연기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대표 넘버인 ‘백성이여 일어나라’는 작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2막 클라이맥스로, 주제 의식과 감정의 총합을 응축해 보여주는 장면으로 평가된다. 해당 곡은 단순한 슬픔의 표현을 넘어, 민중의 각성과 조선의 자주성을 상징하는 선언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극 전체를 통해 쌓아온 정서가 이 넘버에서 폭발적으로 분출되며, 관객에게 강한 감동을 전달한다.
2. 광복 80주년의 시점에서 바라본 공연의 가치
광복 80주년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국 근대사의 비극적 장면 중 하나인 을미사변을 무대화한 <명성황후>는 이러한 시대 인식을 관객에게 환기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작품의 시간 배경은 근대 조선의 시작점이자 종말을 암시하는 시기로, 광복절과 맞물려 공연된 이번 시즌은 더욱 상징적인 울림을 가진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이번 공연은 무대 미술과 음향, 조명을 적극 활용해 현실감을 높였다. 일본 낭인들의 궁궐 침입 장면은 긴박한 음악과 빠른 조명 전환으로 표현되며, ‘황후 암살’ 장면은 정적 속에서 이루어지는 연출로 극적 긴장을 유도한다. 이러한 무대적 장치들은 단순한 시각 효과를 넘어서, 관객의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기여한다.
2021년 공연과 비교했을 때, 이번 시즌은 기술적 완성도뿐만 아니라 감정의 흐름 면에서도 더욱 정교해졌다는 인상을 준다. 필자에게 이번 관람은 단순한 재관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감상의 연속선 위에서, 뮤지컬 <명성황후>는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3. 캐스팅과 무대 기술의 조화
<명성황후>는 작품 자체의 서사적 힘 외에도, 배우들의 역량과 무대 연출의 조화로 완성도를 높이는 대표적인 창작 뮤지컬이다. 이번 2025년 공연에서는 명성황후 역 이외에도 고종, 홍계훈, 이토 히로부미 등 중심 인물들의 개성이 강화되며 극의 구성력을 높였다.
홍계훈 역을 맡은 배우는 절제된 발성과 신뢰감 있는 연기로 극의 안정감을 제공하였다. 고종은 감정의 동요와 정치적 무력감을 교차적으로 표현하며, 인물의 복합성을 부각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전형적인 악역이 아니라, 냉철한 실리주의자로서 묘사되어 극의 현실감을 더욱 높였다.
음악적 측면에서는 넘버 전체가 시대와 감정에 맞춰 재구성되었으며, 오케스트라 편곡 또한 웅장하고 유려하게 구성되었다. 특히 ‘백성이여 일어나라’는 독립의지와 민족적 자각을 고조시키는 상징적인 곡으로 공연의 정서적 마무리를 장식한다. 조명, 세트, 영상 연출 등도 정교하게 설계되어 극의 밀도를 효과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광복 80주년이라는 시대적 맥락 속에서 관람할 때 그 의미가 더욱 강화되는 작품이다. 단순한 공연을 넘어, 오늘날의 관객에게 역사의 책임과 질문을 던지는 무대로 기능한다. 2021년의 인상 깊었던 관람 이후, 다시금 이 무대를 마주한 지금, 이 작품은 여전히 그 존재 이유를 입증하고 있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정수를 경험하고자 한다면, 이번 시즌 공연은 반드시 관람할 가치가 있는 콘텐츠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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