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개봉 전, 우주적 우정을 먼저 만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우주선 안에서 기억을 잃은 채 깨어난 한 남자.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도 모른 채, 인류 멸망을 막아야 한다는 사실만을 하나씩 복기해 나가는 이야기다.
태양의 이상 현상으로 지구가 서서히 얼어붙어가는 상황,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단독 임무. 이 거대한 설정 위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과학과 생존,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앤디 위어의 장편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드디어 완독했다.
영화 개봉 전에 꼭 읽어보겠다는 작은 목표를 세웠는데, 생각보다 두꺼운 분량에 중간중간 고비가 있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이 이야기에는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여운이 꽤 길게 남는 작품이었다.
1. 문과생의 SF 독서법: 이해보다 ‘흐름’
이 작품은 과학적 해결 과정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물리학, 생물학, 수학적 계산까지 촘촘하게 이어지는데, 솔직히 말해 모든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며 읽지는 못했다.
초반에는 하나하나 따라가 보려 애썼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계산식 대신 ‘상황의 흐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선택을 해야 하는지, 지금 이 위기가 얼마나 절박한지, 실패하면 무엇을 잃게 되는지. 신기하게도 그 흐름만으로도 긴박함과 경이로움은 충분히 전달된다. 과학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이야기의 구조와 감정선이 독자를 끌고 간다. 오히려 그래서 더 몰입했다.
2. 이 소설의 진짜 백미: 언어를 배우는 시간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핵심은 과학적 문제 해결 그 자체라기보다, 서로 다른 존재가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지점은 다음과 같다.
- 서로의 생존을 위해 의사소통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순간
-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홀로 한계를 시험하는 선택
- 가장 중요한 목표를 내려놓고 타인을 향해 방향을 바꾸는 결단
이 장면들이 쌓이며 이야기는 단순한 SF를 넘어선다. 종과 언어를 초월한 교감, 그리고 책임과 선택의 무게가 중심에 놓인다. 결국 이 작품이 남기는 감정은 ‘지적 쾌감’보다 ‘우정의 온도’에 가깝다.
3. 영화로 만날 또 다른 우주
영화화 소식을 알고 예고편을 먼저 본 상태에서 책을 읽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라이랜드 그레이스는 자연스럽게 라이언 고슬링의 얼굴로 그려졌다. 앤디 위어의 전작인 <마션>이 보여줬던 유머와 생존 서사의 재미를 떠올려보면, 이번 작품은 그보다 감정선이 더 입체적이다.
과학적 긴장감 위에 관계의 서사가 얹히면서 결의 방향이 훨씬 묵직해진다. 책에서 상상했던 장면들이 스크린에서는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하다. 우주의 스케일보다 두 존재 사이의 거리감이 더 크게 다가올 영화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한 줄 평
"과학은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도, 그들이 나눈 우정의 온도는 선명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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