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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책

책 '오역하는 말들' (황석희, 번역가, 다정함)

by 취향기록노트 2025.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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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오역하는 말들

황석희 번역가의 에세이 『오역하는 말들』은 영화 속 자막을 넘어,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겪는 말과 마음의 오역을 섬세하게 포착한 책이다. 번역이라는 렌즈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따뜻한 기록이다.

1. 같은 언어 안에서도 번역은 필요하다

 

『오역하는 말들』은 영화 번역가 황석희가 두 번째로 선보이는 에세이로, 제목부터 이 책의 핵심을 드러낸다. “같은 언어 안에서도 번역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말에는 번역이 필요 없는 명확한 의미보다는 각자의 해석과 뉘앙스가 개입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모두 말하고 듣지만,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을까? 황석희는 “오역하는 말들” 속에서 우리가 종종 무심코 놓치는 진심, 혹은 왜곡된 해석을 짚어낸다.

이 책은 외국어 번역이 아닌, 일상의 ‘의사소통’을 번역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연인의 짧은 문자, 가족의 무심한 말투, 동료의 애매한 표정. 그 속에는 해석이 필요한 ‘의도’와 ‘감정’이 숨어 있다. 저자는 번역을 단순히 언어 간의 전달이 아닌, 인간 간의 이해로 확장시킨다.

책의 문장 하나하나는 날이 서 있는 동시에 정제되어 있다. 그는 글의 도입부에서 “나는 까칠하다”고 단언하지만, 읽다 보면 그 까칠함의 속뜻이 ‘세심함’이고 ‘배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말은 늘 빈칸이 있다”고 말하는 그는, 그 빈칸을 조심스럽게 채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게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다정한 번역가’의 모습이다.

2. 말의 오역은 사람을 멀어지게 만든다

『오역하는 말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주제는 바로 ‘사람 사이의 거리’다. 같은 말을 해도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르고, 말이 아닌 표정이나 맥락이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그 뉘앙스를 놓치고, 곧장 판단해버린다. 황석희는 그런 오역이 쌓이면 결국 오해가 되고, 그 오해는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만든다고 말한다.

책 속에서는 “누굴 욕하든 궁지에 몰든 몰아붙이든, 그 사람이 숨이라도 한번 크게 쉬도록 그의 남은 땅은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문장이 나온다. 단호한 어조지만, 그 말의 밑바탕에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다. 그는 날카롭게 사회를 바라보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좀 더 다정해질 수 없을까”이다.

번역이라는 작업은 오역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황석희는 오역 그 자체보다, 오역을 인정하지 않고 고집하는 태도를 더 위험하게 본다. 그에 따르면 진심은 단 한 번의 말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말은 번역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그 번역이 어긋날 때 다시금 되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3. 다정함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이 책의 말미에서 황석희는 말한다. “다정한 사람이 훨씬 많다. 다정한 사람이 훨씬 많다. 다정한 사람이 훨씬 많다.” 반복되는 이 문장은 단순한 감상이나 희망이 아니라, 오랜 시간 관찰하고 고민한 끝에 나온 결론처럼 보인다. 오역과 오해가 가득한 세상에서, 다정함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라는 듯하다.

『오역하는 말들』은 문장 하나하나가 명확한 시선과 단단한 생각에서 비롯된 책이다. 직업적으로는 탁월한 번역가지만, 동시에 그는 글을 통해 “사실 우리는 모두 번역가”라고 말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말들을 주고받으며, 상대방을 해석하고, 나를 표현한다.

결론

개인적으로는 <틱틱붐>, <하데스타운> 같은 뮤지컬 번역에 대한 에피소드가 특히 흥미로웠다. 작가는 스스로를 까칠하다고 하지만, 그의 문장은 충분히 따뜻했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인 사람. 황석희 번역가의 언어는 그런 인상을 남긴다.『오역하는 말들』은 말과 감정, 관계의 틈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오역의 순간들을 짚어낸다. 말은 때때로 삶보다 어렵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정성껏 번역하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한 세상에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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