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키메라의 땅』은 인간과 동물의 혼종 생명체를 통해 과학, 윤리, 진화,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묻는 소설이다. 작품의 상상력과 철학적 메시지, 그리고 작가 특유의 서사 구조를 중심으로 작성 해보려고 한다. 특히 이 책을 통해 드러난 ‘과학적 연구와 책임의 문제’는 현실 과학의 도덕적 한계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문 상상력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언제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로 평가된다. 『키메라의 땅』에서도 그의 상상력은 여전히 대담하다. 주인공 알리스는 인간과 동물의 혼종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과학자다. 이 설정만으로도 철학적 불안을 느낀다. 소설 속 혼종들은 돌고래, 두더지, 박쥐, 도마뱀의 특징을 갖고 있다. 알리스는 이들이 인간보다 더 진화된 존재가 되길 바라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다. 이들은 결국 인간과 같은 욕망과 권력 구조 속으로 빠져든다. 베르베르는 “새로운 종의 탄생이 곧 새로운 윤리의 탄생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은유적으로 제시한다. 이 대목에서 이런 의구심도 생긴다. 과연 인간은 신의 자리에 오를 자격이 있는가? 창조의 욕망은 결국 자기 복제와 다르지 않은가? 베르베르는 과학의 탐구심을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탐구가 인간 본성의 그늘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1권은 특히 이러한 사유를 흡입력 있게 전개한다. 새로운 세계의 규칙을 빠르게 구축하고, 각 혼종이 어떻게 사회를 만들어가는지 묘사하는 부분은 스릴러처럼 긴장감이 흐른다. 그러나 그 긴장 속에서 인간의 탐욕이 어떻게 재현되는지 보여주는 작가의 시선은 차갑다. 상상력의 화려함 속에 인간 존재의 불편한 진실을 담아내는 점이 베르베르 특유의 매력이다.
윤리와 창조의 모순, 알리스라는 인물의 그림자
주인공 알리스는 이 작품의 중심이자, 동시에 가장 불안한 존재다. 그는 과학자로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지식을 추구하지만, 그 동기는 순수하지 않다. 어머니의 장애와 상처를 세상 전체로 확장하며 자신이 해야 할 ‘구원’을 과학으로 정당화하려 한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인간이 가진 ‘정당화의 본능’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독자는 알리스를 단순한 괴물로 볼 수 없다. 그는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쉽게 윤리의 이름으로 포장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혼종 생명체의 탄생은 과학적 쾌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결핍이 만든 왜곡된 욕망의 결과다. 이 설정은 ‘탐구’와 ‘윤리’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인간 내면의 갈등을 드러낸다. 또한, 소설은 혼종들이 만들어내는 사회를 통해 인간 사회의 축소판을 보여준다. 그들은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하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지배와 복종, 억압과 생존의 관계가 반복된다. 결국 베르베르는 ‘더 나은 종’의 탄생이 아니라, ‘같은 본성을 지닌 또 다른 종’의 반복을 보여주며 인간의 근원적 한계를 제시한다. 이러한 전개는 독자로 하여금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진화라 부르는 것은 실제로는 윤리적 성숙이 아니라 기술적 발전일 뿐이라는 점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키메라의 땅』의 무게감은 바로 그 통찰에서 비롯된다.
베르베르다운 결말, 그리고 남은 질문
『키메라의 땅』 2권에서는 이야기의 긴장감이 다소 완화된다. 작가는 알리스의 세계가 무너진 뒤에도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하지만 이 결말은 나에게는 급작스럽게 느껴졌다. 앞서 쌓아온 철학적 논제를 다음 세대로 떠넘겨 버리는 인상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은 베르베르 특유의 낙관주의를 보여준다. 그는 절망의 끝에서도 인간의 사유와 상상력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지라도, 그의 문학은 늘 ‘희망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키메라의 땅』은 단순히 생명공학이나 과학윤리를 다룬 소설이 아니다. 인간의 내면, 욕망, 책임, 그리고 ‘창조의 두려움’을 문학적으로 탐구한 작품이다. 알리스가 만든 새로운 존재들은 결국 인간의 그림자이며, 그들을 통해 베르베르는 우리가 무엇을 만들 수 있고, 무엇을 바꾸지 못하는지를 묻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키메라의 땅』은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할 때 발생하는 철학적 문제를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화려한 설정 뒤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냉철한 질문이 숨어 있다. 다소 아쉬운 결말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여전히 독자에게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고, 무엇을 바꾸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상상력은 대담했지만, 결론은 현실적이었다. 바로 그 점에서 베르베르의 문학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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