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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책

성해나 소설 <두고 온 여름>, 여름에 읽기 좋은 책

by 취향기록노트 2025.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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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해나 소설 &lt;두고 온 여름&gt;

성해나의 소설 <두고 온 여름>은 가족이지만 가족이 아니었던 두 사람, 기하와 재하의 재회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실패한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아닌, 다정하지 못했던 시절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여름의 공기처럼 아프고 따뜻하게 독자에게 다가오는 감정 서사 소설이다.

1. 가족도 아닌데 가족인 척해야 했던 시간

성해나의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은 한 장의 ‘가족사진’으로부터 이야기가 출발한다. 매년 여름, 사진사였던 아버지가 찍어주던 기하의 독사진 대신, 열아홉 살 여름에는 처음으로 재혼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게 된다. 그러나 이 ‘가족’은 이름만 가족일 뿐, 기하에게는 낯설고 억지스러운 공동체일 뿐이다.

기하가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거부감이 아니다. 자신에게는 없었던 애정을 재하에게 전심전력으로 쏟는 아버지를 보며, 마음속에 실망과 서운함이 쌓여간다. 가족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재하 어머니의 서툰 노력조차 부담스럽기만 하다. 기하는 스스로를 속여가며 가족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지긋지긋해, 스무 살이 되자마자 집을 떠나버린다.

이 소설은 바로 그 ‘떠난 여름’과 ‘두고 온 감정’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기하가 남긴 자리에서 자란 재하의 기억과 감정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남아 있고, 그 여름의 날선 감정들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닿지 못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는 재하의 태도는 이 작품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정서적 성숙을 보여준다.

2. 오해와 상처로 얽힌 두 사람의 기억이 포개질 때

 

<두고 온 여름>은 두 명의 시점을 오가며, 하나의 사건을 두 가지 감정선으로 따라간다. 기하가 기억하는 여름과, 재하가 돌이키는 그 시절은 다르면서도 맞닿아 있다. 특히 성해나는 두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이 단순히 한쪽의 입장을 따르기보다 각자의 정당한 감정 안에서 오해와 거리감을 이해하게 만든다.

재하의 서사는 조용하다. 그는 이미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완전한 소속’을 느껴본 적 없었고, 기하 형과 진정한 형제가 되고 싶었지만 다가가는 법을 몰랐던 사람이다. 성해나는 이러한 재하의 내면을 ‘낙차’로 표현한다. 동일한 장면 속에서도 누군가는 상처받고, 누군가는 외면당하고,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기억한다. 이 감정의 낙차가 소설 전반을 지배하며, 독자에게도 과거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빛나는 지점은, 인물들이 자신이 받은 상처를 상대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간은 모두를 조금씩 다르게 만든다. 결국, 과거를 꺼내 되짚는 것은 그 시절의 누군가를 탓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잘 살아왔다’고, 또는 ‘그 시절이 그리웠다’고 인정하는 과정이 된다. 이와 같은 복잡한 감정 구조를 성해나는 조용한 문장, 절제된 서사로 아름답게 그려낸다.

3. 여름이라는 계절과 함께 떠오르는 감정들

제목에서 드러나듯 <두고 온 여름>은 계절성과 감정의 흐름을 맞물려 전개되는 작품이다. 뜨거웠지만 어딘가 씁쓸했던 여름, 지나고 나면 선명해지는 감정들, 그리고 아직도 어디선가 미처 끝내지 못한 마음들이 남겨져 있는 듯한 그 계절은 이 소설에 잘 어울리는 배경이다.

기하가 ‘스트리트 뷰’에서 우연히 재하의 모습을 발견하며 이야기는 현재로 옮겨간다. 오랜 시간의 공백을 두고 마주한 두 사람은 과거의 상처를 단번에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 번 대화를 시도한다. 기하가 재하의 중식당을 찾아가고, 과거 아버지와 함께 다녔던 출사지 ‘인릉’을 산책하며 나누는 어설픈 대화들 속에는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과 새로운 해석이 담겨 있다.

이 여름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재회 이후 ‘극적인 화해’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서로가 살아낸 시간을 존중하며, 관계의 실패를 인정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다음 삶을 살아간다는 결론이 더 가슴 깊이 와닿는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괜찮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성해나 작가의 <두고 온 여름>은 감정의 기억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해나 재결합이 아닌, ‘정직한 되돌아봄’과 ‘조용한 이해’라는 메시지를 통해 어긋난 관계가 줄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여름이라는 계절의 결을 닮은 이 소설은, 마침내 다가올 새로운 여름에 읽기 좋은 문학이다. 따뜻하고 조심스러운 이 한 권이 당신의 오래된 감정을 위로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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