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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책

책 <번역: 황석희> 리뷰 (책, 에세이, 감상)

by 취향기록노트 2025.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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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번역:황석희

자막 번역가로 익숙한 이름, 황석희. 그가 이번에는 번역이 아닌 본인의 언어로 삶을 써내려간다. 『번역: 황석희』는 영화 자막을 벗어나, 일상과 감정을 담백하게 풀어낸 따뜻한 에세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번역가’라는 그의 문장 속에서, 나의 감정과 기억 또한 새롭게 번역되기 시작한다.

‘번역: 황석희’라는 문장, 그리고 사람

‘번역: 황석희’는 엔딩크레딧 속 익숙한 표기다. 하지만 이번엔 그 이름이 책 표지 정면에 새겨졌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번역가’의 모습을 넘어,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람이다. 『번역: 황석희』는 번역가로서, 동시에 일상 속 관찰자로서 살아가는 그가 세상과 감정을 어떻게 번역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SNS에 올렸던 짧은 글들과 새로운 글들을 엮은 에세이집이다. 자막이라는 제한된 프레임 안에서는 미처 담지 못했던 생각과 감정들이, ‘자막 없이’ 풀려나간다. 그의 언어는 날카롭지 않고 따뜻하다. 유쾌하거나 위트 있는 동시에, 문장의 끝에는 언제나 따뜻한 공기가 남는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번역’이라는 개념을 넓은 의미로 확장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외국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과정이 아닌, 사람의 말과 감정, 표정과 뉘앙스를 해석하고 전달하는 행위로서의 번역. 그리고 그런 ‘번역의 감각’은 결국 우리 모두가 날마다 실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번역가’라는 말이 그래서 깊이 와닿는다.

일상 번역이라는 공감 – 감정, 문장, 그리고 위로

『번역: 황석희』는 어떤 부분에서는 위로의 책이다. 특히 저자가 본인의 번역 경험을 통해 드러내는 말들이 독자의 감정과 삶을 자연스럽게 감싼다. 책에는 영화 <루이스 웨인> 속 “숨만 쉬어도 살아지는 삶인데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어.”라는 대사를 언급하며, 그 문장이 번역가로서도 특별한 마음으로 남았다고 밝혔다. 나는 그 문장을 읽는 순간, 텔레파시처럼 감정이 전달된 느낌을 받았다. 나 또한 그 영화를 보다가 그 자막을 보고 크게 와닿았기 때문.

또 다른 문장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쩌다보니 이 일을 하게 됐어요.” 누군가는 지나가는 말처럼 들을 수 있지만, 그 문장을 ‘운명적’이라 해석하는 저자의 태도는 많은 직장인과 생활자에게 위로가 된다. 어쩌다 이 일을 하고, 어쩌다 이 커리어를 걷고 있지만, 그것은 의미 없지 않다는 것을 누군가가 ‘번역’해주고 있으니까. 나는 나의 일상도 번역하게 되었다. 상사의 한숨, 연인의 말, 친구의 표정, 아침 공기의 온도까지도 말이다. “콧속에 들어온 차끈한 아침 공기로 겨울이 오고 있음을 깨닫는 것”도 일종의 번역이라는 문장은 감성을 자극하면서도 일상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킨다.

SNS와 연결된 저자의 진심 – 글과 사람, 그 사이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SNS 계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평소 인스타그램에서 짧은 글을 올리는 그를 팔로우해온 독자라면 이 책이 더욱 반갑다. 각종 작품의 번역을 마치고, 그때그때의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는 그의 태도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진심을 보여준다. 이 책은 단순히 좋은 문장을 모은 책이 아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 사람을 마주하는 자세, 직업을 감당하는 마음이 담긴 책이다. 특히 매년 4월 1일에 올리는 ‘그대들의 거짓말이 현실이 되기를’이라는 소제목을 읽으며, 한 해의 소망을 ‘거짓말’이라는 포장으로 감춰 소중히 꺼내놓는 저자의 유쾌함과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문장을 오래 쓰는 사람의 글은 다르다. 문장이 예쁘거나 감정적이라기보다, 살아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오래 읽히고, 가끔 다시 펼쳐볼 수 있는 책이다. 바쁜 일상에 잠시 틈이 날 때, 자기 안의 언어를 다시 번역해보고 싶을 때, 무심히 펼친 페이지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는 책이 바로 『번역: 황석희』다.

 

『번역: 황석희』는 번역가의 책이지만, 동시에 독자의 삶에 대한 책이다. 세상을 다시 읽는 법,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는 법, 내 안의 생각을 더 부드럽게 전달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일상의 오역도 괜찮다. 다시 정중히 묻고, 다시 번역하면 된다. 그리하여 이 책은 조용히 말한다. 우리 모두, 충분히 괜찮은 번역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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