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연 작가의 <홍학의 자리>는 ‘누가 죽였을까’로 시작해 끝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미스터리 소설이다. 반전이 아주 강렬하지만, 단순히 반전 하나로만 승부하지 않는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후에도 생각이 멈추지 않는 책이었다.
1. “호수가 다현을 삼켰다” — 첫 장면부터 몰입하게 되는 분위기
책은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호수에 누군가의 시신이 유기되는 장면. 그리고 그 이름, ‘다현’.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 인물을 상상하게 되는데, 작가는 그 상상이 얼마나 단단한 ‘선입견’이었는지를 아주 늦은 타이밍에 조용히 깨뜨린다.
처음엔 피해자가 누구인지, 왜 죽임을 당했는지 궁금해서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독자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범죄 수사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다현이라는 인물은 이름만 남아 있을 뿐, 누구에게나 다르게 기억된다. 누군가에게는 착한 아이, 누군가에게는 어딘가 수상한 사람, 또 누군가에게는 애틋한 존재다. 그래서 이 인물에 대한 오해와 단편적인 기억들이 하나둘 모일수록, 독자는 '내가 지금까지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2. 불편한 인물, 김준후 | 사람 사이의 거리감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 중 하나는 김준후 선생님이다. 어딘지 모르게 위선적이고, 말투 하나하나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다현과의 관계에서도 감정이 뭔가 어긋난 느낌이 드는데,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 설명하긴 어렵다.
등장인물마다 다현에 대해 떠올리는 방식이 다르고, 그 기억 속에는 의도적으로 흐린 부분들이 있다. 그걸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쉽게 누군가를 오해하고, 단정 짓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그리고 후반부, 독자가 자연스럽게 믿고 있던 어떤 ‘정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신호가 주어지는 순간, 정말 깜짝 놀라게 된다. 그 장면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을 정도다.
3. 끝까지 남는 건 반전보다 마음
<홍학의 자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큰 진실이 밝혀진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도 가장 오래 남는 건, 충격보다는 감정이다. 오해가 쌓이고, 말하지 못한 감정이 겹겹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슬픈 이야기.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미스터리라기보다 사람 사이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작가는 아주 정교하게 독자의 생각을 유도하다가, 조용히 틀어버린다. 그래서 마지막에 ‘다현’이라는 이름이 다시 떠오를 때, 전혀 다르게 보이게 된다.
이 책은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한 줄 한 줄이 작정하고 쓰인 느낌이다. 그리고 아주 잘 쓰였다.
정해연 작가의 <홍학의 자리>는 반전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감정 중심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읽고 나면, 주변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그런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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