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황혼기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보는 내내 가슴 따뜻한 위로와 묵직한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던 작품,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을 보고 왔다.




■ 공연 정보
- 공연 기간 : 2026년 5월 15일 ~ 2026년 6월 28일
- 공연 장소 : 국립극장 하늘극장
- 관람 회차 캐스팅 : 김아영(이영란 역), 차청화(양춘심 역), 김미려(김인순 역), 이예지(이분한 역), 김지철(지석구 역), 하은주(이가을 역)

■ 줄거리 및 시놉시스
평생 글을 읽지 못하는 설움을 숨기며 살아왔던 네 명의 할머니 영란, 춘심, 인순, 분한이 마침내 한글을 가르쳐주는 문해학교로 향한다. 배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고 연필을 잡은 손은 떨리지만, 할머니들에게 학교는 어릴 적 다녀보지 못한 새로운 설렘의 공간이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의 사연을 라디오로 접한 다큐멘터리 PD 석구가 문해학교를 찾아오게 된다. 처음에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누가 관심을 가질까 회의적이었던 석구는 예산 삭감으로 학교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문해학교 선생님 가을과 함께 할머니들이 쓴 '시(詩)'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한다. 할머니들은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자신들의 시를 통해 삶의 기쁨과 과거의 상처를 하나씩 마주하기 시작한다.
■ 개인적인 감상평
"매체 이상으로 무대를 가득 채운 차청화 배우의 에너지"
이번에 관람한 회차는 캐스팅 라인업부터 무척 기대가 컸다. 모든 배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었지만, 그중에서도 양춘심 역의 차청화 배우가 인상적이었다. 평소 TV 드라마를 통해 개성 넘치는 연기를 자주 접했었는데, 무대 위에서 마주한 그녀는 또 다른 매력을 뿜어냈다.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성량과 가창력은 물론이고,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몸을 자유자재로 쓰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극의 활력과 감정선을 이끌어가는 무대 장악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뒤에 숨겨진 세월의 아픔과 눈물겨운 그리움"
작품에 등장하는 네 분의 할머니 모두 저마다 가슴 깊은 사연을 품고 있지만, 이번 관극에서는 이영란 할머니와 이분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유독 마음을 무겁게 두드렸다. 우리말보다 일본어를 먼저 배울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시대를 통과해 온 영란 할머니의 시린 세월이 서글프게 다가왔다.
또한 남아선호사상이 유독 강했던 시절, 딸만 줄줄이 낳던 엄마의 분한 마음이 그대로 이름이 되어버린 분한 할머니의 사연은 너무나 짠했다. 평생 이름에 콤플렉스를 가지며 엄마를 향한 원망이 깊었을 법도 한데, 극의 마지막에 이르러 결국 엄마를 그리워하며 눈물짓는 분한 할머니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원망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던 근원적인 그리움을 마주하는 순간,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투박한 시(詩)로 극복해낸 각자의 트라우마, 그리고 위로"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이 주는 가장 큰 울림은 배움이 짧을 수밖에 없던 시대를 묵묵히 버텨온 분들이 할머니가 되어서라도 한글을 배우고, 자신들의 상처를 시로 승화해내는 과정에 있다. 맞춤법은 조금 틀릴지언정 그 어떤 미사여구보다 강력한 진심이 담긴 투박한 시 구절들은 할머니들이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가는 단단한 무기가 된다.
지나온 세월의 모진 풍파를 견뎌내고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한 가시나들의 용기 있는 발걸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위로를 준다. 자극적인 서사 없이도 인물들의 감정선 변화에 온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을 향한 깊은 존중이 느껴지는 따뜻한 웰메이드 뮤지컬이다.
▲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프레스콜 하이라이트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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