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력질주>는 대한민국 단거리 육상을 배경으로, 인생의 굴곡을 겪는 전직 국가대표와 질주 본능에 빠진 청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실과 한계, 그리고 기록이라는 벽 앞에서 두 인물이 보여주는 열정은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이다. 시사회에서 느낀 신선한 감동과 캐릭터들의 진심을 바탕으로 작품의 의미를 돌아본다.
0.02초의 벽 – 가장 빠른 자가 아닌, 가장 진심인 자
영화 <전력질주>의 서사는 단순한 승부나 경쟁 구도가 아니다. "0.02초"라는 미세한 시간차는 실제 단거리 육상계에서 김국영 선수가 세계선수권 기준 기록을 넘지 못했던 현실을 반영한다. 하석진이 연기한 강구영은 국내 최고 기록 보유자이지만, 그 0.02초를 넘지 못해 실패자라 불리는 인물이다. 구영의 캐릭터는 영광과 추락, 그리고 재기의 욕망까지, 하나의 인생 서사로 구성된다. 시사회에서는 그가 한때 전력을 다해 달렸던 순간들이 지금의 지친 일상에서도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말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연기 경력 20년 차 배우 하석진은 이 배역을 위해 실제로 달리기 훈련을 소화했고, 40대에 100m 완주는 물론 기록 향상까지 이뤄냈다고 한다. 영화는 '기록'이라는 숫자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달리는가", 그리고 "왜 달리는가"를 묻는다. 하석진의 캐릭터가 보여준 노장의 고통과 집념은, 단순히 육상 영화라기보다 인생을 돌아보는 성숙한 시선으로 느껴졌다. 단 0.02초 차이일지라도, 그 사이에는 수천 번의 발걸음과 감정이 존재한다는 메시지가 울림을 준다.
질주의 본능 – 청춘의 속도와 방향성
이신영이 연기한 강승열은 축구공보다 빠르다는 놀라운 운동신경을 가진 청소년이다. 그가 트랙에 들어선 계기는 단순히 도전이 아니라, 운동장을 달리는 소녀 임지은(다현)을 향한 감정에서 비롯된다. 승열은 뛰는 쾌감을 알게 되며 달리기에 매료되고, 점차 유망주 장근재를 넘어서려는 목표까지 가지게 된다. 이 캐릭터는 단순히 육상 유망주라기보다, 청춘의 감정과 속도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보였다. 시사회 간담회에서 이신영은 한여름 달리기 연습 중 정말로 쓰러질 뻔했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그의 연기는 단순히 기술적인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영화 <리바운드>에 이어 또다시 운동선수를 연기한 그는, 스포츠물에서 꾸준히 진정성을 보여주는 배우로 성장 중이다. 영화 속 승열은 방향 없는 속도를 내며 방황하는 듯 보이지만, 곧 자신만의 리듬과 목표를 찾게 된다. 특히 지은과의 교감을 통해 그는 '기록'보다 '감정'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관객은 청춘의 불안과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확신을 함께 느끼게 된다. 열정은 결과보다, 그 속도의 진심에서 온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함께 달리는 사람들 – 청춘 영화로서의 가치
영화 <전력질주>는 육상이라는 스포츠적 소재를 중심에 두되, 청춘 영화로서의 감성과 연출도 잊지 않는다. 특히 다현이 연기한 임지은은 트랙 위에서 달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인물이다. 실제로 발목 부상을 겪은 경험이 있어 캐릭터에 애틋함을 더했다고 밝힌 다현은, 지은을 통해 달리는 순간의 벅참과 해방감을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윤서빈이 연기한 근재, 이순원이 연기한 준수 등 조연 캐릭터들도 영화에 활력을 더한다. 특히 지은, 승열, 근재가 함께 훈련하며 성장하는 장면들은 청춘물이 가진 특유의 발랄함과 순수함을 잘 전달했다. 이는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영화의 톤을 균형 있게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감독 이승훈은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국가대표 선수 김국영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달리기의 감각을 세심하게 구현했다. “발이 가볍게 느껴졌다”는 실제 선수의 표현을 스크린에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곳곳에 드러난다. 관객은 뛰는 장면만 봐도 그 감각을 함께 체험할 수 있다. 이처럼 영화 <전력질주>는 ‘달리기’라는 동작을 넘어 ‘살아가는 태도’로까지 확장시킨다. 각기 다른 이유로 출발선에 선 인물들이 함께 달리며 교감하고, 때론 멈추기도 하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을 보며, 관객은 자연스레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된다.
영화 <전력질주>는 단순한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청춘의 열정과 노장의 품격, 기록에 도전하는 인간의 감정이 교차하는, 감정의 드라마다.
시사회에서 느낀 가장 큰 울림은 “즐겁게 달리는 것”이 결국 가장 진짜라는 메시지였다. 1등이 아니어도, 자신을 넘은 순간이 가장 짜릿하다는 영화의 철학은, 관객의 가슴에도 그대로 전해진다.
[이 글은 초대권을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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