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이프덴(If/Then)>은 멀티버스 세계관을 바탕으로, 같은 사람이 다른 선택을 했을 때 어떤 인생을 살게 되는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독특한 구조의 작품이다. 존경받는 뮤지컬 작곡가 톰 킷과 브라이언 요키가 <넥스트 투 노멀> 이후 다시 의기투합해 만든 이 작품은, 평범한 여성 ‘엘리자베스’가 ‘리즈’와 ‘베스’라는 두 인생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일, 사랑, 가족, 인생의 굴곡을 다룬다. 2022년 한국 초연 당시 강한 메시지와 감각적인 구성으로 주목받았고, 2024년 재연에서는 무대와 연출, 캐스팅이 새롭게 보완되며 관객들의 공감과 몰입을 더욱 끌어냈다.
2022년 첫 관람: 선택이란 무엇인가
내가 처음 <이프덴>을 본 건 2022년 초연 때였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멀티버스’였다.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뉴욕으로 돌아온 첫 날, 두 가지 선택 앞에 서게 된다. 친구 케이트와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면 ‘리즈’가 되고, 대학 동창 루카스를 따라가면 ‘베스’가 된다. 이 작은 결정 하나가 두 개의 전혀 다른 삶을 만들어낸다. 나는 유리아 배우의 엘리자베스를 봤고, 스토리 전개의 독특함과 넘버의 완성도, 그리고 무대 위 현실적 언어(“왓더뻑 좋됐다~”)가 신선하고 통쾌하게 다가왔다. 일, 사랑, 결혼, 임신, 출산 등 인생의 커다란 분기점에서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하는 여성의 삶이 깊이 있게 그려지며, 진부한 주제일 수도 있으나 계속 곱씹게 되었다. 두 개의 평행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 뮤지컬은 구조 자체가 매우 도전적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점점 ‘두 인생 모두가 소중하고 의미 있다’는 메시지에 몰입하게 됐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인지, 후회 없는 삶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묻게 됐다.
2024년 재연: 깊어진 감정과 변화된 시선
그리고 2024년, 두 번째로 이프덴을 다시 봤다. 2년 사이 무대는 더 밝고 다채로워졌고, 조명은 리즈와 베스를 더욱 명확히 구분해줬다. 양쪽 사이드에 설치된 멀티버스 조명 장치가 주황색(리즈)과 파란색(베스)으로 번갈아 들어오며 시각적 이해를 도와줬다. 이번엔 정선아 배우의 엘리자베스를 봤다. ‘안녕 나야’ 첫 소절에서부터 눈물이 찡했고, ‘혼자가 되는 법’, ‘I Hate You’, ‘Starting Over’까지… 확실히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의 내공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유리아 배우가 아쉬웠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진태화 배우의 조쉬는 따뜻했고, 최석진 배우의 루카스도 미묘한 감정선을 잘 살려줬다. 무대 구성이나 연출도 더 매끄러워져서 초연보다 몰입감이 높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게 느껴진 건, 2년 전과 지금의 ‘나’가 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관람했던) 틱틱붐이 서른을 앞둔 존의 이야기였다면, 이프덴은 마흔을 앞둔 엘리자베스의 이야기. 나 역시 그 사이에 서른에서 마흔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가게 되면서 그 선택의 무게, 계산적인 마음, 실패를 피하고 싶은 욕망이 전보다 더 절절하게 다가왔다.
선택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깊은 사유
이프덴은 공연 내내 말한다. “모든 선택에는 얻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수없이 내 인생을 떠올렸다. 젊었을 땐 도전이 먼저였는데, 점점 더 ‘이 선택은 손해 볼까?’, ‘실패하면 어쩌지?’ 같은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 하지만 이프덴은 말한다. 내가 어떤 선택을 했든,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고, 더 좋은 기회가 생길 수도 있고, 혹은 지금의 선택이 나를 무너지게 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정말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이프덴은 단지 구조가 신기한 작품이 아니라, 내 삶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뮤지컬이었다.
뮤지컬 <이프덴>은 두 번 보면 다르게 다가온다. 같은 장면이어도, 나의 인생이 달라져서 그 감정선이 다르게 읽힌다. 첫 번째 관람에선 구조와 넘버에 감탄했지만, 두 번째 관람에선 그냥 ‘내 이야기 같아서’ 눈물이 났다. 모든 선택이 옳을 수는 없고, 모든 길이 평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프덴은 내게 이렇게 말해줬다. “어떤 삶을 살든, 너의 인생을 응원해.” 그 말 한 줄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따뜻하게 해줬다.